찰리 멍거와 버핏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 되었을까?
두사람의 나이차이는 6살 인데, 워런이 29살, 찰리멍거가 35살에 그들은 멍거의 귀향 축하 파티에서 만났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의 인연은 찰리 멍거가 버핏 앤드 선에서 일하며 하루 2달러를 벌 때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버핏의 할아버지는 오마하의 고급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찰리멍거는 그 식료품점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 식료품점은 찰리의 집에서 약 여섯 구역 떨어진 구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워런의 할아버지 어니스트가 식표품점 대표이자 공동오너 였다. 엄격한 원칙주의자인 어니스트는 어린 직원들에게 식사 시간이나 휴식을 제공하지 않고 12시간 교대 근무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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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 식료품점의 고된 노동환경은 찰리와 워런 모두에게 오랫동안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 가난한 찰리의 연감 中 -
가난 한 찰리는 가난하지 않았다.
찰리의 할아버지는 연방 판사였으며, 찰리의 아버지 또한 변호사로서 법조계 집안 출신이였다. 1930년 대공황 때에도 많은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 할때, 찰리의 집안은 큰 걱정 없이 지낼수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리는 어린나이에 부모의 인맥으로 거리의 보행자수를 세는 따분한 일자리를 얻어 시간당 40센트의 급여를 받고 일을 하였다.
찰리의 어리시절을 보면, 아주 영민한 아이였는데, 어렸을 때 부터 책을 읽는것을 좋아 했으며, 특히 유별난 정치인이자 발명가인 프랭클린을 좋아 했었다. 벤저민 플랭클린은 정부, 기업, 금융, 산업 분야에서 폭넓은 경력을 쌓았었는데, 그는 한 기념행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고 한다.
애덤 스미스를 친구로 만들면 경제학을 더 잘 배울 수 있을 겁니다. '사망한 위인'과 친구과 된다는 말이 우습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사상을 지닌 사망한 위인들의 삶을 따라가며 그들과 친밀해지는 방식은 삶과 교육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가난한 찰리의 연감 中
이미 고인이 된 훌륭한 위인들의 삶을 따라간다는 것은 그들의 삶과 사상이 녹아 있는 그들의 저서를 읽는 방법 밖에 없다. 찰리는 정말이지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사회 초년생 변호사 찰리의 부를 위한 노력.
찰리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변호사 된 이후, 책임져야 할 가족이 늘어 남에 따라 수임료를 더 받기 위해 노력 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수입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찰리는 주식투자를 시작하게 된다.
연방 판사이셨던 할아버지로 부터 배운 합당한 원칙, 당면한 과제에 대한 집중에 대한 가르침으로 보수적인 관점에서 부를 쌓아 나갔다.
이후 찰리는 동료들과 함께 법무 법인 차리게 되는데, 회사를 차리는 것이 최종 목표라기 보다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발판이었다. 그는 실제로 법무법인이 출범할 무렵 이미 거기서 발을 빼기 위한 계획을 마련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투자합작회사를 만들었다.
워런 버핏과의 만남
찰리는 투자 합작회사 설립 후,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된다. 찰리는 고향인 오마하로 돌아가 아버지의 유산을 관리해야 했다.
찰리의 귀향을 환영하기 친구이자 의학 스승인 에드 데이브스의 자녀들이 디너파티를 준비 했다. 그 자리에 워런 버핏이 참석 하게 되며, 그들의 인연은 시작 되게 된다.
귀향 축하 파티에서 찰리와 워런은 서로의 생각이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테이블에 앉은 다른 사람들은 둘의 대화가 잘 통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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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은 찰리가 계속 변호사로 일하는 것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변호사 일이 좋은 취미 일 수는 있지만, 자신이 하는 일보다는 덜 유망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 가난한 찰리의 연감 中
찰리와 워런은 만남 부터 사상과 투자 철학이 비슷 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금수저 출신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린시절 부터 일을 하며, 노동의 가치와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해서 몸소 체험 했을 것이다. 그들이 겪어온 1930년대 대공황 시절, 그 어려웠던 시기, 속된말로 돈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 갈 수 밖에 없었던, 그 무서움을 알았을 것이다.
20세기 초, 대격변의 시대, 가정 환경, 노동에 대한 조기 경험,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책,
그들은 그렇게 성장, 발전하며, 서로 보완 해 가면서,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를 1975년 말 38달러에서 현재 거의 80만 달러의 대형 기업으로 만들 수 있었다.
현재 40대가 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깊은 고민을 해본다.